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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일본보다 조선이 피지배층에 더 나은 이유

by eomeo.net 202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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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조선 vs 일본, 피지배층의 삶 비교

조선과 일본, 과연 어느 나라의 농민이 더 인간답게 살았을까요? 한국의 역사학자 황현필은 기존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반기를 들며, 조선 농민의 삶이 일본보다 낫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이 글에서는 황현필의 주장과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조선과 일본의 농민을 다각도로 비교하여,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과 그가 새롭게 주장하는 조선의 차이를 살펴보려 합니다.

통치 철학: 민본 vs 수탈

조선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민본(民本) 사상을 실현하려는 중앙집권 국가였습니다. 왕은 지방에 관리를 파견해 백성을 보호하려 노력했고, 탐관오리에 대한 감찰 제도도 엄격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쇼군과 다이묘의 연합 통치 구조로, 각 지역 영주가 사실상 농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백성이 죽지도 살지도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수탈을 정당화했으며, 이는 일본 농민의 삶이 생지옥 같았던 이유입니다.

신분 상승 가능성

조선은 양천제 사회로, 과거 시험을 통해 양반으로 신분 상승이 가능했습니다. 문과 급제자 중에도 신분이 낮은 이들이 많았다는 자료는 조선이 능력 중심 사회였다는 증거입니다. 반면 일본의 농민은 거의 신분 상승이 불가능했습니다. 사무라이 계층에 편입되려면 군공을 세워야 했으며,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농민으로 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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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제도: 절대적인 차이

조선의 토지세는 세종대왕 시기 연분9등법 도입으로 최대 20두, 이후 4두로 낮아지는 등 백성을 위한 절세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반면 일본은 농민의 수확량의 50~70%를 수탈했으며, 7할을 영주가 가져가고 3할만 농민이 먹는다는 '칠공삼민(七公三民)' 관행이 존재했습니다. 이는 조선 농민의 세금 부담이 일본보다 훨씬 낮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식생활과 영양 상태

조선시대 밥그릇클라스



조선 농민은 평균적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조선인들이 일본인보다 세 배는 더 먹는다는 일본인의 기록이 있으며, 실제로 새참, 고기, 국 등이 풍부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농민은 백미에 반찬이 부족해 각기병에 시달렸고, 도시는 위생 문제로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초밥도 반찬이 부족한 식생활에서 유래했습니다.

평균 키와 건강 상태

조선 남성의 평균 키는 161cm, 일본은 154cm로 약 7cm의 차이가 납니다. 이는 영양과 생활수준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외국인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인은 체격이 크고 건강했으며, 도덕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거주 이전의 자유

조선 농민은 신고만 하면 이주가 가능했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 일본 농민은 다이묘에 예속된 농로로 거주지 이탈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도망시 적발되면 사형까지도 당했습니다.

반란과 저항의 기록

500년 조선 왕조 동안 발생한 농민 반란은 약 1,400건입니다. 에도 막부 약 250년 동안 일본에서는 3,000여 건의 농민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반란의 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당시 농민의 삶의 고통도를 나타내는 간접 지표입니다.

조선의 피지배층은 진짜 헬이었나?

물론 조선도 완벽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세도정치, 부정부패, 천민 차별은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의 비교에서 조선은 피지배층이 그나마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체제였습니다. 조선은 과거 시험이라는 통로를 열었고, 절세 정책으로 농민을 보호했으며, 국왕은 민본 사상을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식민지 근대화론이 심어 놓은 헬조선 프레임에 갇혀 있어선 안 됩니다. 조선을 일본보다 못한 나라로 치부하며 자학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우리 역사를 모르는지를 방증할 뿐입니다.

결론

조선 농민의 삶은 일본의 농민보다 인간적이었습니다. 왕은 애민 정신을 강조했고, 백성의 삶을 돌봤습니다. 황현필은 국뽕이나 일본에 대한 감정적 비판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근거에 기반하여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익히 보아오던 조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조선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자학사관을 벗어나 구체적인 역사적 근거를 기반으로 조선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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